1. 오늘 밥 먹으면서 잠깐 휴대폰 인터넷에 접속했더니 영화에 쓰이는 소품 알고 보니 진짜 총 이런 식의 제목이 있길래 "흠 어떤 기자가 프롭 총기에 대해 기사라도 썼나 보군."하면서 가볍게 클릭해 보았더니 이게 웬 일? 영화촬영용 소품 업체 관계자가 경찰에 입건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국내에 프롭 총기 관련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데 가뜩이나 힘든 여건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상당히 착잡한 소식일 것이다.
2. 보도 언로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종합해 보면 현재 언론을 통해 일반에 전파되고 있는 이번 사건의 내용 중 주요골자는 대충 아래와 같다.
"서울지방경찰청이 영화 촬영에 소품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M16, AK47, UZI 등의 총기류를 미국 파라마운트 계열의 프롭 총기 담당자로부터 구입한 뒤 국내에서 보유하고 있었던 관계자 정 모씨를 불구속 입건하였다."
3. 국내 프롭총기의 현실은 매우 빡빡하다.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안전하게 영화 촬영용으로 개조된 프롭 총기마저도 영화 촬영이 있을 때 그 때에만 소품 프롭을 수입한 다음 촬영이 끝나면 다시 대여업체가 있는 외국으로 돌려보내거나 파기(!)해야 한다. 이번에 불구속 입건된 정 모씨는 아마 외국으로 돌려보내거나 파기하는 과정 대신 국내 창고에 보관하며 계속 사용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영화 한번 찍을 때마다 일일이 대여하고 반납하고 하면 비용이나 시간적으로 상당한 낭비가 있기 때문이다.
소품 총기와 화약 등을 확보하는 문제는 영화 촬영 뿐 아니라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영화 알 포인트 제작 당시 제작진은 해외 촬영현장에서 소품용 프롭 총기와 화약을 대여했지만 때마침 불어닥친 태풍 때문에 촬영이 지연되는 바람에 원래 시나리오 상 예정되어 있던 액션 씬을 제대로 촬영하지도 못 하고 대여 소품들을 반납해야 했고 영화의 시나리오도 수정되어야 했다.
GP506 촬영 당시 사용된 K2 소총은 한국군의 제식 소총이지만 국내에 영화 촬영을 위한 프롭이 없었기 때문에 외국 대여 업체에서 들여와 영화를 촬영해야 했다. 한국군이 나오는 영화를 찍을 때조차 외국 업체의 도움을 받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런데도 관계기관이나 여론은 불법 총기류 운운하며 예비 살인마 취급만 하고 있다.
이러니 미국처럼 영화 촬영에 군부대 지원까지 해주는 걸 기대하기는 어림도 없는 현실이다. 한국영화의 힘? 아, 그런 단어도 들어본 기억이 있네요.
4. 어쨌든 현행법상 위반사실이 있다면 단속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악법도 법이니까. 하지만 경찰도 이게 그렇게 위험한 물건이라거나, 그걸 다룬 정 모씨가 위험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불법총기류를 단속하면서 불구속 입건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증명이 아닐까 싶다. 구속과 불구속이 위법 사실의 경중을 다루는 기준으로 착각되기는 하지만 최소한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사람을 불구속한다는 기본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언론에서 개조하면 사람도 죽일 수 있다고 호들갑을 떠는 총기류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굉장한 무법자라는 이미지인데 그런 사람을 불구속시킬 리가 있나.
5. 가장 짜증나는 건 자극적인 제목과 문장을 만들어내는 기자들이다. 이번에 단속된 정 모씨 외에도 군용품과 관련된 입건 사항이 또 있는데 신설동에서 미군부대 유출 군수품을 판매해 온 군장 매매자였다. 연합뉴스 보도 내용을 보자.
서울지방경찰청은 군용 총기와 총기 부품, 지뢰탐지기 등을 해외나 미군부대에서 몰래 들여와 영화 소품으로 빌려주거나 인터넷으로 판매하려 한 혐의로 51살 정 모씨 등 9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달아난 한 명을 추적하고 있습니다.영화 소품으로 대여한 정 모씨와 인터넷으로 군장류를 판매한 다른 피의자는 전혀 다른 인물이며 이들의 법률 위반 사항도 별개이다. 그런데 보도 내용을 보면 마치 정 모씨가 해외에서 들여온 소품 총기를 영화 촬영을 위해 대여할 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려 한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 위반사항에 의한 법률적 해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 멋대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다른 보도 내용을 보면
서바이벌 게이머 등에게 지대공 미사일을 판매했다는 내용도 있다. A라는 사람과 B라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A는 C라는 법률위반을 저질렀고 B는 D라는 법률위반을 저질렀다. 그런데 이를 두고 언론에서 기사화를 하는데
C와 D 등의 범죄를 저지른 A씨 등 2명을 입건하였다.
이렇게 써버리면 A가 C, D를 저지른 사람으로 인식될 수 밖에 없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볼까? 미국에 샘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만든 샘성이라는 회사가 있다고 치자. 이 회사에서 김 모 기자에게는 성접대를 제공하고 양 모 기자에게는 그냥 보도자료만 보냈다. 그런데 이 사실이 나중에 밝혀져서 이를 두고 다른 언론에서 기사화를 했는데
샘성으로부터 성접대를 받고 기사화 요청을 받은 양 모 기자 등 언론인들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렇게 나오면 양 모 기자는 얼마나 억울하겠냐. 자기는 고추에 물도 못 묻혀보고 웹하드로 보도자료 받은 거 밖에 없는데 졸지에 밤에 논 사람이 됐으니 말이다.
펜이 사람을 죽인다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단어의 순서를 가지고 문장을 조립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사회적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거다.
신이시여 제가 손 가는대로 타이핑을 하는 한국인을 몇 명 죽여도 되겠습니까?6. 비록 보관이나 대여 과정에서 위법사항이 있었다 하더라도 소품총기 유입과 불법군수품 매매는 엄연히 다른 케이스이며 정 모씨가 불법군수품 판매업자와 동일한 취급을 받을 수도 없는 일이다.
제발 단 한 언론매체라도 좋으니까, 소품총기 유입과 불법군수품 매매는 다르다는 사실을 기사화해 주었으면 좋겠다.
무리라는 거 압니다. 신이시여 제가...(하략)
7. 게다가 이 불법군수품 매매도 보도내용이 심하게 부풀려진 문장들이 보인다. 아 정말 이 사람들아...
Tacticat 090521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