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13일 월요일

존 매케인, 하노이 힐튼 방문


동료들과 함께 단란하던 시절의 존 매케인(사진 오른쪽 아래)




존 매케인(John Sidney McCain III)은 지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공화당측 대통령 후보였다.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그 정도 프로필이 그에 대한 일반적 상식이 아닐까 싶은데, 검색해 보면 꽤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존 매케인이 지난 4월 8일 힐튼 호텔을 방문했다. 정치가가 호텔에 가는 게 뉴스거리나 될까? 그 호텔이 하노이 힐튼이라면 당연히 뉴스거리가 된다. 그것도 '장기 투숙자'였던 존 매케인이라면 말이다.

매케인씨네 집안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미해군에서 제독을 지낸 해군 집안이다. 이런 집안에서 태어나서 아버지 전 만화가가 될래요 이런 소리 했다간 진주만 바다 밑바닥 아리조나 옆자리에 수장되기 딱 좋다.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존 매케인은 해군 공격기 조종사가 되었다.

베트남전이 발발하자 그는 다른 동료 조종사들과 함께 미국을 떠나 북베트남 지역에 배치된다. 북베트남 앞바다에는 미 해군 항모가 양키 스테이션(Yankee Station)이라 불리며 늘 머물러 있었다. 존 매케인이 속한 항모는 포레스탈(USS Forrestal)호였는데 이 배가 미해군 사상 최고의 사고 중 하나에 휘말리게 된다.
1967년 7월 29일 포레스탈호 갑판 위의 F-4 팬텀 전투기에 탑재되어 있던 주니(Zuni) 로켓이 갑자기 발사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갑판 위는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작전 투입을 위해 무장과 연료를 가득 적재하고 있던 다른 함재기가 연쇄폭발을 일으켰다. 당시 사고는 134명의 승조원이 목숨을 잃었고 62명이 부상을 입은 대사건이었다.
존 매케인은 A-4 공격기 조종사로 화재가 발생하자마자 잽싸게 도망쳐서 구사일생의 행운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3개월 후 10월 26일 북베트남 공격 임무 중 격추되어 하노이 힐튼에 체크인하게 된다. 처음에 존 매케인을 포로로 잡은 북베트남군은 그가 누구인지 모르고 하노이 포로 수용소에 수감된 다른 포로 조종사들과 '동등하게' 고문과 심문을 가했지만 그가 미해군 명문가의 존 매케인이란 사실을 알자 부상 치료는 물론 다른 포로보다 나은 대우를 해준다. 물론 이것은 좋은 집안 사람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 북베트남이 거물을 잡았다는 사실을 홍보하기 위한 홍보전략이었다.


척 보기에도 암울한 아우라가 느껴지지 않는가?

북베트남의 선전용 도구로서 이용당하며 꼼짝달싹할 수 없는 포로생활을 한 그는 1973년이 되어서야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추락 당시 팔다리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은 상태로 포로생활을 했기 때문에 석방되었을 때도 거동이 불편하였고 이때의 장애는 지금까지도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베트남 정부 측은 자기들 식으로 창창하게 미군과 싸운 역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형태의 기념관과 전시물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하노이 힐튼 포로 수용소이다. 이 곳에는 수감된 미군 포로와 관련된 사진과 그들의 의류, 장비 등이 전시물로 놓여져 있다.

이 곳을 방문한 존 매케인을 공교롭게 만든 전시물은 바로 그가 입었던 비행복과 헬멧, 군화, 낙하산 등의 '매케인 선물세트'였다고 한다. 더욱 공교로운 것은 전시물 중 군화는 매케인이 착용한 것이 아닌 다른 물건으로 추측된다는 것이다.

베트남의 군사박물관도 그다지 실제 역사고증에 고민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착오 혹은 무신경한 전시물이 종종 보인다고 하는데 아마 그런 경우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닉슨 시절과 달리 지금의 베트남은 미국과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이고 존 매케인은 미국의 정치인으로서 베트남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베트남을 방문하였으니 상황이 달라져도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자기가 갇혀 있던 포로 수용소를 다시 방문한 기분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일부 내용은 밀리터리 실패열전(13,000원/ISBN 978-85578-15-8)의 내용을 인용하였다.


Tacticat 0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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